“헤일로 씨한테는,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래서, 과거가 없다고……네, 저한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말하기, 힘드셨을 텐데…….”
기억이 없는 사람.
그제야 헤일로 씨의 과거가 없다는 말이 이해됐다. 정말 말 그대로, 과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세상에 튀어나와 버린……이방인, 혹은 나그네였다.
이 세상에 존재케 하는 가느다란 줄 하나 없이, 그저 부유하는 사람.
내 부모님에게는 서로가 있었고, 내가 있었는데. 영원히 과거에 살아가는 나에게마저 부모님과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리하여 그를 과거에 묶든, 현재에 묶든……어찌 되었든, 이 세상에 살게 하는 줄이 있었는데.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었구나.
“헤일로 씨, 죄송해요…. 헤일로 씨에게는 제 말이, 기만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헤일로 씨의 말대로……과거가 있으니까.”
족쇄와도 같은 과거조차 없는 당신에게는 어떤 말을 건네야 좋을까.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건 서툰 머리에서 한참 말을 골라냈다. 익숙한 사고가 흘러갔다. 이 말은 안 돼, 기만 같잖아. 그것도 안 돼,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 안 돼, 그렇게 말했다가 내가 하는 말을 나쁘게 받아들이면 어떡해? 안 돼, 전부…….
역시, 사람을 대하는 건 어려웠다. 그렇게 한참 말을 고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당신은 커다란 얼음 같았다. 커다랗고, 바다를 표류하는 얼음. 그렇지만, 속은 텅 비어서……충격을 가하면, 와장창 깨져버릴 얼음. 겉으로 보기에는 단단하지만, 그 속은 텅 비어 연약한……그런 얼음.
모든 게 반대였다. 내가 강하다고 생각한 당신은 실은 연약했고, 당신은 연약하던 나를 강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상냥한 말을 해주시네요~. 이제 제 존재 자체가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나 봐요~…? ……으음, 농담이었어요~. 하하, 죄송해요~…. 적절한 말은 아니었죠~?”
정말 이상하지.
나는 정말로, 겁쟁이가 맞는데. 모든 무서운 것들에서 죄다 도망쳐버린, 저항하는 법이라고는 하나도 배우지 못한 겁쟁이가 맞는데.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정말로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과거의 아저씨만큼이나 강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제가 정말 나아갈 수 있다고……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 나아가고 있다고…….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서 이곳에 있는 건데~…, 그런데도, 나아가고 있다고……그렇게 보이시나요?”
헤일로 씨는, 저를 너무 좋게 봐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고, 이곳에는 정말로 실종된 아저씨를 찾기 위해서 왔을 뿐인데. 십몇 년도 전에, 이상현상 속에서 실종된 직원을 찾기 위해서 들어온……진실에서마저 도망치고 있는 사람일 뿐인데.
그런데, 그게 내 목표라고.
아저씨를 찾기 위한 지금의 이 미련한 행동이, 과거에 대한 아집이 아니라고 하니까. 미래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아, 정말로 말하고 싶었다.
헤일로 씨는, 정말로 저를 너무 좋게 봐요. 심지어……그걸, 그대로 믿고 싶게 만들어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헤일로 씨는~, 제 불운이 아니에요. 제 운명은, 분명히 불운이지만……제 운명은 아주 가끔, 저에게 자비로웠거든요~. 제가 사랑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애정하는 브란트 가문에서 태어났듯, 아저씨를 만났듯. 종종 제게, 자비를 내려주더라고요~….”
불운으로 가득 찬 삶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척이나 커다란 나의 행운들. 불운이 내 운명을 이룬다면, 그들은 나라는 인간 자체를 이뤘다. 바네사 브란트의 삶에는 운명이 내민 불운으로 가득했지만, 그들이 바네사 브란트를 빚어냈기에……적어도 불운에서 도망칠 의지가 생겨났다.
“헤일로 씨는…, 제 불운이 아니에요. 헤일로 씨를 만난 건, 절대 불운이 아니죠~…. 헤일로 씨가 불운이었다면……저는 이렇게 손을 내밀며, 친구가 되자고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저는 불운에서 도망치는 법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니까~….”
아저씨가 그랬다.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의지를 갖고, 겨우 불운에 지지 말라고. 불운에 저항할 의지를 갖고, 살아가라고.
그러면, 아저씨. 내가 강해질 의지를 가진다면……강해질 수도 있는 걸까? 그 강해질 의지가, 타인의 말에서부터 온 의지라 해도?
……결국, 그 의지를 가진 사람은 나니까?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을 거예요~. 당장 저희가 나누고 있는 대화도, 내일이면……아니, 대화가 끝날 때면 과거가 되어 있을 테니까~… 당장 지금도, 헤일로 씨의 과거는 채워지고 있는 걸요~.”
무엇이든 당신의 과거가 될 수 있다, 내가 끊임없이 버리고 싶어 했던 아픔도 결국 내 과거인 것처럼.
그렇지만, 이런 말은 어쩌면 와닿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당신의 과거가 의미 있는 것이기를 원하니까. 나에게 가족이 있었듯, 아저씨가 있었듯……당신의 과거에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기를 원하니까.
그리고, 여전히 어린 날에 사는 나는 어린아이처럼 욕심쟁이라서……그 친구가, 되고 싶으니까.
“제가, 헤일로 씨의 과거가 되어 드릴게요. 과거만이 아니라……현재도, 미래도 전부. 제 친구가, 제 과거가 되어줬던 것처럼, 그렇게 미래가 되어, 제 현재를 만든 것처럼……헤일로 씨에게도, 헤일로 씨의 친구로서~….”
나는 아직 연약해서, 당신을 그 물살에서 끌고 나올 수는 없겠지만……텅 빈 얼음 같은 당신의 안을 채우는 것을, 도울 수는 있으니까.
그렇게 하면 당신이, 빙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당신은, 마냥 물살에 밀려나지 않을 거잖아? 커다란 돌을 만나도, 무력하게 깨지지 않을 거야. 어쩌면 해일에도 멀쩡할 수 있을 테고, 조각나더라도……여러 개의 빙하가 되어, 다시 거친 물살을 여행할 수 있을 테니까.
“있죠, 헤일로 씨는……으음, 속이 텅 빈 커다란 얼음 같아요~. 겉보기에는 크고, 단단해 보이지만……실은 연약한, 그런 얼음~. 그러니까……바다를 유영하는 빙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파도에 이리저리 밀릴 뿐인 얼음이요~.”
당신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간다. 내 말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까? 그저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며, 내게 상냥했던 아저씨를 떠올리며. 내가 닮고 싶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당신에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단단하다고 했으니, 정말로 단단한 사람처럼.
“제가, 헤일로 씨의 과거가 되어서……, 헤일로 씨를, 빙하로 만들어 드릴게요~.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하다면……물살을 이겨낼 정도로, 강해지면 될 거예요. 단단한 빙하라면, 거친 물살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고, 괜찮아요. 헤일로 씨는, 제 족쇄가 되는 게 아니니까~. 헤일로 씨는, 제가 도망치지 않을……그런, 의지가 되는 거예요. 그건, 족쇄와 많이 다르잖아요~…?”
당신은 나에게 강해질 의지를 주는데, 그게 어떻게 족쇄가 될 수 있을까.
타인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것과,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다르다. 헤일로 씨가 주는 의지는, 내가 도망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의지였다.. 도망치지 않고, 단단해져……언젠가, 나의 곁에 달라붙은 이 불에서, 불운에서 도망치지 않고 이길 수 있게 하는 의지.
“으음, 저는 불이니까……, 헤일로 씨의 안을 제가 채워버리면~…, 헤일로 씨가 녹으려나…….”
불은 얼음을 녹이는 존재. 얼음을 녹여, 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싶은 얼음에게는 나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요. 헤일로 씨가 저를 삼켜, 얼음이 녹더라도……그러면, 물살과 하나가 되는 거니까~…. 그러면, 사나웠던 물살도 헤일로 씨의 편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정말로, 어떤 운명이 다가오더라도……헤일로 씨는, 무사할 거예요.”
당신의 물이, 물살과 하나가 된 당신이 나를 녹이지는 않을 거야.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
당신은 나를 단단하게 하는, 내 상냥한……나에게 강해질 의지를 선물한, 나의 친구니까.
“그러니까, 정말로 괜찮아요~. 저희는 분명, 함께 강해질 수 있을 거예요~….”
***
있지, 아저씨.
아저씨는 왜 나랑 친구가 되었던 거야?
나는 그저 우울한 옆집 꼬마였을 뿐이고, 아저씨에게 그 꼬마를 도울 의무는 없었잖아.
그런데 왜, 내게 친구가 되자고 했어?
……있지, 아저씨.
나, 이제는 아저씨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것 같아.
지금 내 앞에, 나를 닮은 사람이 있거든. 어린 나를 닮은, 위태로운 사람이.
그리고 마침, 나는 그 사람보다 연상이고……아저씨처럼, 재단연합회의 직원이야. 또, 그 사람은 이제 내 친구이기도 하고.
있지, 아저씨.
이제 이 사람은 내 친구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지?
아저씨가 그랬잖아, 그런 게 친구라고.
나 아저씨한테 배운 그대로, 내 친구한테 그대로 해줄게.
……그러니까, 나중에 만나면 칭찬해 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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