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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Limen] 도르가 → 헤일로

x-jung 2026. 5. 7. 22:54

 엘리노라 휘트모어.

 

 헤일로 씨의 반지 안에 새겨진 이름이 녹색 눈에 새겨졌다. 그 이름에는, 어떤 과거가 들어 있을까. 바네사 브란트라는 이름에 과거가 새겨져 있듯, 저 이름에도 과거가 새겨져 있을 텐데. 비록 나는, 그리고 헤일로 씨 역시 그 안에 새겨진 과거를 읽을 수 없지만. 과거는, 이제부터 채워가면 되는 것이기에.

 

 당신이 원하는 대로, 입을 연다.

 

 "알겠어요. 그렇게 부를게요, 엘리노라 씨…라고. 으음, 재단연합회에 들어와서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네요~."

 

 엘리노라 씨의 웃음을 보며, 나 역시 마주 웃는다. 그리고, 엘리노라 씨가 한 말들에 천천히 대답을 단다. 이제 나를 과거로 둘 사람에게, 당신의 과거가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그러게요, 제 운명은 어쩌면… 불운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네요. 엘리노라 씨의 말대로, 그냥… 남들보다, 살짝 운이 나빴을 뿐일 수도 있겠네요. 지금까지, 너무 힘든 마음에… 제 운명을, 불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앞에는 늘, 불운만큼 큰… 아니, 불운보다 더 큰 행운이 찾아왔었는걸요."

 

 잊고 있었다. 내가 불운할 때면, 내 앞으로 기적처럼 찾아온 행운들이 있었다는 것을. 부모님이 내 행운이었고, 아저씨가 내 행운이었으며… 내 앞의 엘리노라 씨 역시, 나의 행운인데. 이렇게 큰 행운들이, 내 삶에는 항상 나타났었는데. 어떻게, 불운을 운명이라고 말했던 걸까?

 

 상냥한 진실들이, 내 머리에 들어왔다. 무서운,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과는 달리… 무척이나 상냥한 진실이.

 

 "지금도, 제 앞에 제 행운이 서있는데… 왜 몰랐을까요~?"

 

 무서운 진실을 인정해야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 바로 앞까지, 매서운 불길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저 열기를 피해 약간 물러설 뿐… 불이 나에게 닿지 못할 정도로 멀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어쩐지, 이 불 앞에서도… 강해질 의지를 갖고,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엘리노라 씨, 페이지가 공백이 되었다면… 이후의 페이지라도 열심히 채우면 돼요. 펜을 들고, 조금씩 쓰다 보면~… 엘리노라 씨의 현재였던 페이지는, 어느새 뒷 페이지가 되어 있을 거예요~…."

 

 쓰기 힘들다면 천천히 쓰면 되고, 쓰기 즐겁다면 열심히 쓰면 되는 일이다. 아예 써지지 않는다면,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면 된다. 당신이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했던 것처럼. 게다가 과거에 묶여 있던 우리는, 이제 출발선에 섰으니까… 조금 느리게 출발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저는 정말 괜찮아요, 엘리노라 씨. 제 목표는, 그렇게 가볍지 않거든요~. 저는, 제 목표를 쉽게 놓치지 않아요. 이렇게 간절하니까, 놓치지도 않아요~…. 저는, 엘리노라 씨의 생각보다 더, 집착이 강하니까요~…. 십몇 년 전의 인연인데, 그 인연을 찾아서 여기 왔어요. 그런데, 설마 놓치겠어요~?"

 

 내가 나를 소개했듯, 당신도 당신을 소개했다. 누군가와 이렇게,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며 자신을 소개한 게 얼마만이었더라? 그게 기뻐서, 막고 싶어도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옛날의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건 이유를, 정말로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정말로 괜찮아요… 엘리노라 씨. 엘리노라 씨가 강하다고 한 저는, 강해질 의지를 가진 저는… 정말로, 강해질 수 있거든요."

 

 엘리노라 휘트모어 씨, 내 앞에 있는 사람의 과거를 가진 분.

 

 죄송해요, 당신의 이름을 한 번만 빌릴게요.

 

 "그러니까, 당신의 친구인… 저를 믿어요, 엘리노라 씨. 제가 보고 배울 친구는 한 명밖에 없어서… 저는 그 사람한테 받은 것들을, 그대로 엘리노라 씨에게 할 생각이거든요~…."

 

 저는 이제 당신의 이름으로, 내 친구를 부를게요.

 

 당신의 이름을 친구의 이름으로 쓰게 된 이상, 내 친구가 소중하게 불렀을 당신의 이름을 친구에게 붙인 이상….

 

 저 역시, 당신의 이름을 소중하게 부를게요.

 

 그러니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소중한 사람을 부르기 위해 쓰일 거예요.